페이지 정보
본문
아침이지만 ‘똥’ 예찬을 늘어놓았다. 개똥으로 상추밭을 지켜낸 이야기며 쾌변이 힘찬 하루의 시작이라는 말에 남편은 공감한다며 박수를 친다. 어린아이들은 똥 이야기, 방귀이야기를 하면 손뼉을 치며 좋아하는데 어른들은 그 단어를 금기시 한다. 소문이 ‘베잠방이 방귀 새듯 한다.’ ‘똥 싼 놈이 성 낸다.’라는 말을 심심찮게 활용한다. 그 말들은 다양한 상황을 설명할 때 가장 경제적인 문장이고 또 가장 적확한 표현이겠다.
아카시아 향기로 가득한 숲속마을에서는 집집마다 텃밭에 상추며 고추모종을 심었다. 간신히 뿌리를 내려 자라기 시작한 상추 잎을 앞산 고랑각시가 내려와 깨끗이 뜯어 잡수셨다고 아낙들이 난리다. 저번에는 윗집, 어제는 아랫집도 상추밭이 초토화 되었다고 모두들 어이없어 했는데 다행히도 우리 집에는 풍산개 ‘강이’가 지키고 있기 때문인지 상추밭이 무사하다.
이른 아침 재잘대는 새소리에 잠에서 깨어 상추밭을 살피러 나갔다.
앗! 다녀갔구나.
집 뒤편의 상추밭 가장자리에 고라니가 드디어 입을 대기 시작했다. 풍산개를 피해 몰래 먹고 갔나보다. 우리집 상추밭까지 공격당하면 마을에 상추가 없어질 터이다.
고라니는 풍산개의 용맹함을 알고 있었나보다. 남편은 아침마다 씨감자같이 동글동글한 풍산개 똥을 주워 상추밭 가장자리에 지뢰를 묻듯 <고라니 접근금지> 울타리로 똥줄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숲의 바람도, 새도 깊이 잠든 밤에 식사하러 내려온 고라니는 풍산개의 똥 냄새에 오금이 저렸는지 상추도 못 먹고 멀찍이 떨어진 소나무아래 까만 제 배설물을 소복이 쏟아놓고 갔다.
“오우!, 훌륭한 개똥!”
남편의 똥 처방은 성공했다. 덕분에 우리 집 상추는 이웃에 나누어 주기에도 바쁘게 잘 자란다. 풍산견 ‘강이’를 먹고 똥 쌀 줄 밖에 모르는 ‘똥기계’ 라고 흉을 봤었는데 밭지키미 똥을 생산했으니 제 밥값은 하고 있었다.
돌 축대 밑에 애기똥 풀꽃이 노랗다. 가녀린 줄기위에 피워 올린 꽃이 애기똥 같아서 지어진 이름일까. 꽃대를 잘랐을 때 흐르는 등황색 유액은 영락없이 흰 기저귀를 물들인 애기똥 색이다.
서른을 훌쩍 넘겨 결혼한 조카는 제왕절개수술로 아기를 출산했다. 산후 후유증으로 육아는 남편 몫이 되어 직장에 육아휴직을 내고 유모가 되었다. 애기 아빠는 시간과 온도를 맞춰 수유하고, 목욕시키기. 기저귀 갈기로 쉴 틈이 없다. 아빠 품에 안긴 아기가 우유를 양껏 먹고 나면 애기 아빠는 두툼한 손으로 토닥토닥 등을 두들겨 트림을 시키고, 기저귀를 간다. 구수한 젖내와 적당히 말랑한 애기똥을 보며 세상을 다 얻었다고 싱글벙글 이란다.
엄마들은 다 안다. 아기가 어떤 때 푸른똥을 누고, 어떤 때 희누르스름한 똥을 누는지를. 대변은 ‘생체지표’다. 과민성 대장증후군으로 자주 설사와 변비를 반복하는 나는 건강한 배설이야말로 신이내린 비움의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굳이 ‘비워야 채울 공간이 생긴다.’라는 말을 떠 올릴 필요도 없다. 스위치를 켜지 않아도 소우주인 우리 몸에서는 흡수해서 공급 할 것과 비워 내야 할 것을 구분하여 철저히 분리 배출하니 신의 창조력에 새삼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자연은 순환한다. 산천을 뒤덮은 나뭇잎과 풀들이 다시 흙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안반대기>의 그 엄청난 고랭지 배추를 먹고 배설되지 않는다면, 아마 인간과 지구는 폭발해 버릴 것이다. 배설은 또 다른 창조이며 축복이다.
‘고갯길의 땅’이란 뜻의 이름을 가진 인도의 ‘라다크’ 사람들은 척박한 환경을 극복하며 자급자족으로 삶을 이어간다. 먹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아끼고 남은 것은 오롯이 자연으로 돌려보낸다. 말린 짐승의 배설물조차 요긴한 땔감이다. 우리가 어렸을 때에도 마른 소똥을 쥐불놀이 깡통에 넣고 돌리던 기억이 있다. 풀만 먹은 소똥은 은근히 타며 밤의 허공에 수없이 원을 그렸다. 몸은 물질의 풍요를 원하고, 마음은 빈곤했던 그 시절의 순박함이 그립다.
신화동에 사는 구순의 할아버지도 똥 이야기를 할라치면 끝이 없다고 했다.
“마실꾼들과 놀다가 뒤가 마려우면 집으로 뛰어갔어. 남의 집에 주면 아까워. 똥은 치우는 게 아니라 거둬들이는 거여. 이른 아침이면 동네를 돌며 망태기에 개똥도 줍고 소똥도 아꼈어.”
생명이 있는 것들의 똥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주체를 가늠하게하며 자연으로 돌 아가는 순환의 일등공신이다. ‘밥 한 공기는 남에게 공으로 주어도 거름 한 소쿠리는 남에게 안준다.’는 속담도 똥의 소중함을 아는 선조들의 지혜를 말해준다. 싱싱한 상추밭과 대장견 풍산개 똥, 긴장감으로 쏟아놓은 고라니 똥, 하루가 다르게 양을 늘려가는 조카의 애기똥을 떠올리며 이아침의 똥 예찬은 칭찬 받을 수 있는 화두가 아니었을까.
그대여! ‘똥’을 똥이라고 더럽다 말라.
글 함무성 수필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