멥쌀과 찹쌀의 차이는 전분의 구조적 차이로 구분된다. 전분은 아밀로우즈와 아밀로펙틴으로 구별되며, 아밀로우즈의 함량이 약 7% 이내인 것을 찰벼로 부르고 16% 이상인 것을 메벼로 부른다. 도정된 쌀은 반투명한 것을 멥쌀로 보고 불투명하여 뽀얀 쌀을 찹쌀로 본다. 멥쌀 품종은 그냥 벼 稻자를 붙이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찹쌀 품종에는 찰벼 ?자나 찰질 粘자를 붙이곤 하였다.
멥쌀은 소화가 잘되어 주로 주식으로 사용되고 유전학적으로도 우성이어서 더 일반적이고 수량도 많기에 예나 지금이나 재배의 주가 된다. 찹쌀은 분자구조상 소화 속도가 느리고 주식으로서는 잘 활용되지 않지만, 각종 별미음식과 절기음식의 재료로 사용되어 왔다.
예전에는 멥쌀 그 자체만으로도 귀했지만 찹쌀은 더더욱 접하기 어려운 귀한 대접을 받아왔다. 조상들의 찹쌀에 대한 선망은 매우 컸으리라 생각된다. 찹쌀은 너무나 귀하여 - 일 년에 몇 번 안 되는 명절이나 잔치에서나 먹어봤을까 - 주식으로는 먹을 수 없었을 터이고, 드물게 몇 점 먹어본 쫄깃함은 평생 뇌리에 남았을 것이다. 민요를 보면, 찹쌀떡을 너무 욕심껏 먹다가 목이 메어 죽게 되는 대목이 나오기까지 한다.
1. 돼지찰벼 (저나, 돈나, 도아지) 고문헌과 민요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찰벼를 들라면 단연 “돼지찰”벼가 아닐까 싶다. 돼지의 외형적 특징을 따서 이름이 붙기도 하고, 찰벼로서 그 맛이 우수하였기 때문에 전국 각지에서 폭넓게 회자된 듯도 하다. 일제강점기에 정형화된 경기 민요가 전국으로 퍼지면서 돼지찰벼도 무가(巫歌)나 노동요로서 해당 지역성을 반영하여 채택되었을 성싶다.
그림. 돼지찰벼(돈나, 저나, 도아지). 벼와 까락이 붉은색인 만생종 토종찰벼이다.
풍석 서유구(1764~1845)와 이옥(1760~1815)은 돼지찰을 한자로 저나(猪?)와 저점(猪粘)으로 기록하였고 모두 까락이 있고 검은색이었다고 기록한다. 조선말에는 돼지를 머릿속에 떠올리면 검은색이 연상되지 않았나 싶다.
박나 (駁?)【얼룩찰. 까락이 있고 얼룩덜룩한 빛을 띤다. 왜나(倭?)라 부르기도 한다. 순 검정색을 띠는 벼는 저나(猪?, 돼지찰)라고 부른다. 물이 찬 논에서 가장 좋다.】 (서유구의 임원경제지 본리지편).
저점(猪粘, 돼지찰)은 까락이 검은색이어서 까마귀찰벼(鴉粘)라고도 부른다. (이옥의 백운필).
1913년 발행된 조선도품종일람(朝鮮稻品種一覽)에서는, 저나(猪?, 돼지찰)가 수집된 지역으로 강원, 경기, 경남, 경북, 전남, 전북, 충남, 충북, 평북, 황해도 등 80여개 군으로, 당시 벼농사가 가능한 웬만한 지역은 거의 다 “돼지찰”벼가 재배된 것을 볼 수 있고, 이명으로 돈나(豚?)로 기록하기도 했다. 이름은 같지만 특성은 서로 다른 것이었다.
수염이 빨개서 돼지찰이냐 [훨훨이. 고양 김매기 소리] 혼자 먹어라 돼지찰 [고사반. 경기 양주시 광적면효촌리 김환익 채록 1999] 혼자 먹었다 돼지찰벼 [논매는 노래(단호리야). 경기 여주군 북내면 신접리. 최간난 1979] 검은 것은 돼지찰 [방아타령, 연천군지] 혼자 먹었다 돼지찰 [잘하네 못하네. 괴산군 민요, 1995] 혼자 먹는에 대지찰 [거북이노래, 음성군 금왕읍 민요. 1974] 저 못판은 찰벼몬데 돼지찰벼 모로도라 [모찌기소리. 음성군 소이면 민요. 1983] 혼자먹자 돼지찰 [청주시 무가의 고사덕담. 한국구비문학대계. 1981] 혼자먹어라 돼지찰베 [음성군 고사소리. 한국민요대전. 노희태. 1992]
오래전부터 여러 지역에서 재배됐듯이, 그 지역의 민요에서 거의 단골로 돼지찰벼가 등장한다. 특히, 경기도와 충북지역의 민요나 무가에 상당히 자주 등장한다. 일상에서는 한자인 猪? (저나, 豚?(돈나))가 아닌 한글 “돼지찰” 또는 “도아지”로 부른 것을 보면 농민들은 한문보다 한글 벼 이름을 선호했음을 알 수 있다. 벼의 외형적 특징 이외에 돼지찰벼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가사 속에서 살펴볼 수 있다. 여럿이 나누어 먹는 찹쌀이 아니라 (몰래) 혼자 먹어야 할 정도로 맛이 좋았었음을 유추해 볼 수 있고, 다른 측면으로는 욕심이상으로 탐식하는 돼지의 습성에 빗댄 재담으로도 볼 수 있다.
현재 농촌진흥청 종자은행(농업유전자원센터)에 보존되어 있는 돼지찰벼(도아지, IT005915)도 있다. 이 품종은 까락이 있고 키가 크며 극만생종의 특성으로 조사되어 있다. 이러한 특성은 지금의 기계화된 벼농사에는 잘 안 맞는 특성이다. 양분 투입이 낮아야만 그나마 덜 쓰러진다.
고문헌과 민요들을 살펴보면, 최소한 조선말로부터 관주도의 장려품종이 확대되던 1970년대까지 전국적으로 여러 가지 재래종벼가 재배되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돼지찰벼는 딱 한 가지 품종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각 지역에 적응한 다수의 품종이 있었으며, 찹쌀로서 맛이 각별하여 귀하게 여겼던 것도 알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붉거나 검은색의 까락(수염)이 있었던 품종이며, 볍씨에 얼룩이 있었음도 유추할 수 있다.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에 수많은 토종찰벼들 중에서 조금만이라도 맛이 좋다면 그냥 “돼지찰”로 불렀을 가능성도 있다. “돼지찰”이라는 말 속에는 오랜 세월에 거쳐 형성된 오래된 맛의 기억이 담겨있었을 것이다.
돼지찰벼라는 이름을 달고 현재까지 재배되는 지역은 민요가 사라지듯이 거의 다 사라졌다. 그 중에, 옥천군 안내면에서 재배되는 “돼지찰벼”는 벼의 색깔이 약간 붉고, 쌀알은 작고 둥글한 모양이며, 볏대가 가늘고 까락은 거의 없거나 짧은 것을 볼 수 있다. 이 지역에서 지금으로부터 40여년 이전부터 재배해오고 있는 찰벼로, 신품종 벼보다 잘 쓰러지기 때문에 지금은 겨우 몇 농가만이 재배하고 있다. 그러나 떡을 했을 때 맛이 좋고 덜 굳고 강정을 만들면 고유한 전통의 맛이 살아있기 때문에 가끔 이 돼지찰벼만 찾는 분들은 있지만, 재배가 줄면서 시장유통은 거의 안 되는 실정이다. 최근에는, 이 찹쌀을 이용하여 전통주를 담갔을 때 술의 품질이 상당히 좋았다는 평도 들을 수 있었다. 이는 토종 찹쌀 그 자체로서의 판매 이외에 지역과 문화와 전통성을 담는 가공식품으로의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림. 돼지찰 (옥천 수집종). 까락이 없고, 알곡이 작은 중생종 토종찰벼이다.
현장에서 소멸되어가는 것을 안타까워하여, 국제슬로푸드 생물다양성재단에서는 우리나라 공주 지역에서 재배되어 온 토종 돼지찰벼를 맛의 방주(Ark of Taste) 목록에 등재하기도 하였다.
멥쌀과 찹쌀의 차이는 전분의 구조적 차이로 구분된다. 전분은 아밀로우즈와 아밀로펙틴으로 구별되며, 아밀로우즈의 함량이 약 7% 이내인 것을 찰벼로 부르고 16% 이상인 것을 메벼로 부른다. 도정된 쌀은 반투명한 것을 멥쌀로 보고 불투명하여 뽀얀 쌀을 찹쌀로 본다. 멥쌀 품종은 그냥 벼 稻자를 붙이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찹쌀 품종에는 찰벼 ?자나 찰질 粘자를 붙이곤 하였다.
멥쌀은 소화가 잘되어 주로 주식으로 사용되고 유전학적으로도 우성이어서 더 일반적이고 수량도 많기에 예나 지금이나 재배의 주가 된다. 찹쌀은 분자구조상 소화 속도가 느리고 주식으로서는 잘 활용되지 않지만, 각종 별미음식과 절기음식의 재료로 사용되어 왔다.
예전에는 멥쌀 그 자체만으로도 귀했지만 찹쌀은 더더욱 접하기 어려운 귀한 대접을 받아왔다. 조상들의 찹쌀에 대한 선망은 매우 컸으리라 생각된다. 찹쌀은 너무나 귀하여 - 일 년에 몇 번 안 되는 명절이나 잔치에서나 먹어봤을까 - 주식으로는 먹을 수 없었을 터이고, 드물게 몇 점 먹어본 쫄깃함은 평생 뇌리에 남았을 것이다. 민요를 보면, 찹쌀떡을 너무 욕심껏 먹다가 목이 메어 죽게 되는 대목이 나오기까지 한다.
1. 돼지찰벼 (저나, 돈나, 도아지)
고문헌과 민요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찰벼를 들라면 단연 “돼지찰”벼가 아닐까 싶다. 돼지의 외형적 특징을 따서 이름이 붙기도 하고, 찰벼로서 그 맛이 우수하였기 때문에 전국 각지에서 폭넓게 회자된 듯도 하다. 일제강점기에 정형화된 경기 민요가 전국으로 퍼지면서 돼지찰벼도 무가(巫歌)나 노동요로서 해당 지역성을 반영하여 채택되었을 성싶다.
풍석 서유구(1764~1845)와 이옥(1760~1815)은 돼지찰을 한자로 저나(猪?)와 저점(猪粘)으로 기록하였고 모두 까락이 있고 검은색이었다고 기록한다. 조선말에는 돼지를 머릿속에 떠올리면 검은색이 연상되지 않았나 싶다.
박나 (駁?)【얼룩찰. 까락이 있고 얼룩덜룩한 빛을 띤다. 왜나(倭?)라 부르기도 한다. 순 검정색을 띠는 벼는 저나(猪?, 돼지찰)라고 부른다. 물이 찬 논에서 가장 좋다.】 (서유구의 임원경제지 본리지편).
저점(猪粘, 돼지찰)은 까락이 검은색이어서 까마귀찰벼(鴉粘)라고도 부른다. (이옥의 백운필).
1913년 발행된 조선도품종일람(朝鮮稻品種一覽)에서는, 저나(猪?, 돼지찰)가 수집된 지역으로 강원, 경기, 경남, 경북, 전남, 전북, 충남, 충북, 평북, 황해도 등 80여개 군으로, 당시 벼농사가 가능한 웬만한 지역은 거의 다 “돼지찰”벼가 재배된 것을 볼 수 있고, 이명으로 돈나(豚?)로 기록하기도 했다. 이름은 같지만 특성은 서로 다른 것이었다.
수염이 빨개서 돼지찰이냐 [훨훨이. 고양 김매기 소리]
혼자 먹어라 돼지찰 [고사반. 경기 양주시 광적면효촌리 김환익 채록 1999]
혼자 먹었다 돼지찰벼 [논매는 노래(단호리야). 경기 여주군 북내면 신접리. 최간난 1979]
검은 것은 돼지찰 [방아타령, 연천군지]
혼자 먹었다 돼지찰 [잘하네 못하네. 괴산군 민요, 1995]
혼자 먹는에 대지찰 [거북이노래, 음성군 금왕읍 민요. 1974]
저 못판은 찰벼몬데 돼지찰벼 모로도라 [모찌기소리. 음성군 소이면 민요. 1983]
혼자먹자 돼지찰 [청주시 무가의 고사덕담. 한국구비문학대계. 1981]
혼자먹어라 돼지찰베 [음성군 고사소리. 한국민요대전. 노희태. 1992]
오래전부터 여러 지역에서 재배됐듯이, 그 지역의 민요에서 거의 단골로 돼지찰벼가 등장한다. 특히, 경기도와 충북지역의 민요나 무가에 상당히 자주 등장한다. 일상에서는 한자인 猪? (저나, 豚?(돈나))가 아닌 한글 “돼지찰” 또는 “도아지”로 부른 것을 보면 농민들은 한문보다 한글 벼 이름을 선호했음을 알 수 있다. 벼의 외형적 특징 이외에 돼지찰벼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가사 속에서 살펴볼 수 있다. 여럿이 나누어 먹는 찹쌀이 아니라 (몰래) 혼자 먹어야 할 정도로 맛이 좋았었음을 유추해 볼 수 있고, 다른 측면으로는 욕심이상으로 탐식하는 돼지의 습성에 빗댄 재담으로도 볼 수 있다.
현재 농촌진흥청 종자은행(농업유전자원센터)에 보존되어 있는 돼지찰벼(도아지, IT005915)도 있다. 이 품종은 까락이 있고 키가 크며 극만생종의 특성으로 조사되어 있다. 이러한 특성은 지금의 기계화된 벼농사에는 잘 안 맞는 특성이다. 양분 투입이 낮아야만 그나마 덜 쓰러진다.
고문헌과 민요들을 살펴보면, 최소한 조선말로부터 관주도의 장려품종이 확대되던 1970년대까지 전국적으로 여러 가지 재래종벼가 재배되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돼지찰벼는 딱 한 가지 품종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각 지역에 적응한 다수의 품종이 있었으며, 찹쌀로서 맛이 각별하여 귀하게 여겼던 것도 알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붉거나 검은색의 까락(수염)이 있었던 품종이며, 볍씨에 얼룩이 있었음도 유추할 수 있다.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에 수많은 토종찰벼들 중에서 조금만이라도 맛이 좋다면 그냥 “돼지찰”로 불렀을 가능성도 있다. “돼지찰”이라는 말 속에는 오랜 세월에 거쳐 형성된 오래된 맛의 기억이 담겨있었을 것이다.
돼지찰벼라는 이름을 달고 현재까지 재배되는 지역은 민요가 사라지듯이 거의 다 사라졌다. 그 중에, 옥천군 안내면에서 재배되는 “돼지찰벼”는 벼의 색깔이 약간 붉고, 쌀알은 작고 둥글한 모양이며, 볏대가 가늘고 까락은 거의 없거나 짧은 것을 볼 수 있다. 이 지역에서 지금으로부터 40여년 이전부터 재배해오고 있는 찰벼로, 신품종 벼보다 잘 쓰러지기 때문에 지금은 겨우 몇 농가만이 재배하고 있다. 그러나 떡을 했을 때 맛이 좋고 덜 굳고 강정을 만들면 고유한 전통의 맛이 살아있기 때문에 가끔 이 돼지찰벼만 찾는 분들은 있지만, 재배가 줄면서 시장유통은 거의 안 되는 실정이다. 최근에는, 이 찹쌀을 이용하여 전통주를 담갔을 때 술의 품질이 상당히 좋았다는 평도 들을 수 있었다. 이는 토종 찹쌀 그 자체로서의 판매 이외에 지역과 문화와 전통성을 담는 가공식품으로의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싶다.
현장에서 소멸되어가는 것을 안타까워하여, 국제슬로푸드 생물다양성재단에서는 우리나라 공주 지역에서 재배되어 온 토종 돼지찰벼를 맛의 방주(Ark of Taste) 목록에 등재하기도 하였다.